Emily in Paris, 우리가 바라보는 파리, 그리고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파리
넷플릭스에서 파리를 주제로 한 드라마가 나오자마자 한국에 있는 친구들, 사촌 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 드라마 봤어? 이 드라마 보니까 더 파리에 가고 싶어 졌어."
과연 어떠한 모습의 파리를 담았을까 궁금한 마음에 당장 넷플릭스를 켜게 되었다. 제목에서 짐작이 가듯, 미국 시카고에서 우연한 기회로 파리에 있는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게 된 주인공 에밀리의 이야기다. 미국에서 온 에밀리가 로망의 도시 파리에서 겪는 좌충우돌을 보여주는 드라마로 외국인의 입장에서 나 또한 흥미롭게 볼 수 있는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는 내내 한참을 웃기도 하면서 가끔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지금의 내가 살고 있는 파리와 참 다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이 드라마를 직접 본 프랑스인 친구들의 경우, 현실과 너무 다른 모습만 반영했다며 혹평을 멈추지 않았다. 에밀리와 같이 처음 파리에 도착했을 외국인의 나의 입장에서 공감했던 내용과 현재 프랑스에 3년 간 살면서 직접 바라본 현실 이야기가 어떻게 다른지 소개해 보겠다.
내가 공감한 부분
#1. 프랑스어를 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무시되는 문화
프랑스어로 기본적인 인사말을 배우지 않은 채 이곳에 온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시 1위로 꼽히는 파리이기에, 간단한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겠지.라는 생각은 어리석다.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들은 영어로 질문을 받고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어로 대답해 버린다. 특히 전 세계 어디서든 통하는 '영어'가 모국어인 미국인들에게는 이런 프랑스인들의 반응은 그들의 언어에 대한 자부심과 외부인에 대한 무시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는 않더라도 기본적인 인사법은 미리 준비하고 연습해 오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처음 프랑스인을 만났을 때, "Do you speak english?"가 아닌 "Bonjour Madame/Monsieur"가 먼저 나와야 하는 것이다. 먼저 이들의 말로 간단한 인사말을 건넬 수 있는 것, 아주 사소한 방법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차가운 프랑스인들과 정반대의 반응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2. 여유로운 출퇴근 문화 &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회사 문화
프랑스 명품 마케팅 회사에서 처음 출근을 한 날, 주인공 에밀리는 회사 건물 밖에서 2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 이유는 너무 일찍 출근했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서 나 또한 프랑스에서 처음 회사에 출근한 날, 가장 먼저 오피스에 도착 해 다른 직원들을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이곳에서 일하면서 출퇴근 시간이 보다 자유로움을 발견하였다. 직원카드로 출근도장을 찍어야 한다거나 밤늦게까지 야근하는 문화는 찾기 힘든 곳이다. 또한 상사와 부속 직원 간의 상하관계에서도 상사를 충분히 존중하며 그에 따른 예의와 존중이 따르지만 조직 내에서 최대한 평등한 구조로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맛과 미식가의 나라
파리에서의 특별한 즐거움 중 하나는 바로 맛있는 음식들이다. 바게트와 온갖 종류의 디저트뿐 아니라 동네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고급진 프랑스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물론 맛뿐만 아니라 그 음식이 예쁘게 접시에 담겨 나오는 모습에서 이곳 프랑스 사람들의 눈과 입이 모두 즐거운 식사 문화를 엿볼 수 있다. 프랑스인들에게 음식은 단 한 끼의 배고픔을 채우는 용도보다는 주위 사람들과의 맛과 향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시간으로 여기는 것 같다. 음식을 예술이자 쾌락으로 생각하는 프랑스 사람들과의 한끼 식사, 드라마 속 주인공 에밀리도 반한 모습이었다.
#4. 오래된 빌딩, 작은 방
고급 명품 브랜드들을 상대하는 마케팅 회사인 만큼 이곳에서 일하는 주인공 에밀리 역시 화려하고 고급진 패션을 보여준다. (물론 파리지앵들 중에 눈에 띄는 명품을 직접 몸에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명한 고급 브랜드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모습의 그녀가 파리에서 머물게 될 아파트는 엘리베이터도 없고 수도도 자주 끊기는 아주 오래된 빌딩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꼭대기 층의 작은 방인데, 이는 예전 하인들이 머물던 방으로 아주 저렴한 가격에 현재는 학생들이 많이 이용한다. 겉에서 보이는 파리 시내 수많은 빌딩들은 고풍스러움을 그대로 유지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현대식 건물은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대부분 오래된 건물들이며 내부 모습 역시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드라마에서 보인 파리의 현실과 다른 모습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내가 공감하지 못한 부분
#1. No diversity
파리를 하루라도 여행해 본 관광객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파리 중심부 샤틀레 역에 도착해서 이곳이 과연 어느 나라인가 궁금했던 순간이. 아프리카와 중동지방 곳곳에서 온 이민자들이 북적이는 모습에 과연 이곳이 내가 기대한 프랑스가 맞을까? 궁금했을 것이다. 다른 예로, 유럽에서 가장 혼잡한 기차역 중 하나인 파리 북역 (Gare du nord)에 가면 아프리카와 인도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형성한 이민자촌으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온갖 다른 문화와 다양함이 뒤섞인 데서 나오는 이국적인 느낌이 진짜 파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에밀리가 생활했던 드라마 속 파리에는 이런 다양한 파리를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
#2. 너무나 깨끗한 파리, 꿈일까?
파리를 짧게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가장 먼저 하는 말 중 하나가 "왜 이렇게 오줌 냄새가 나죠?"이다. 파리의 지하철을 한 번이라도 이용해 보았다면 기억할 것이다. 공중 화장실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이곳에서 시내 곳곳, 지하철 역사 내부에까지 사람들이 자유롭게 볼일을 본다. 공공장소에서 피할 수 없는 오줌냄새와 지하철 역에서 기어다니는 쥐들을 보면서 더럽고 지저분한 파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 예로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청결함과 깔끔함을 갖춘 일본에서 온 관광객들의 일부는 이러한 더러운 파리 모습에 충격을 받고 본국으로 돌아가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드라마 속 에밀리가 한번이라도 지하철을 이용해 봤다면? 조금이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도시의 모습이 그려졌을까?
#3. 프랑스 남자들에 대한 편견
드라마에서 보이는 프랑스 남자들은 어쩌면 여성을 잠자리 상대로만 원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회사 내에서도 직장 파트너들끼리 불륜 관계가 당연시 그려지고 카페나 공공장소에서 쉽게 껄떡대는 다소 문란해 보이는 남자들의 모습이 나온다. 한 에피소드에서는 17세의 청소년과 실수로 잠자리를 가진 에밀리에게 남자의 어머니가 "우리 아들 침대에서 괜찮나요?"라고 직접 묻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정말 심하게 과장 된 내용이었다. 감히 프랑스에서 몇 년을 살아본 경험으로서 부모가 아들의 잠자리 수준을 묻는다든지, 길거리 여성들에게 쉽게 들이대는 문란한 모습의 남자들은 만나보지 못했다.
과연 이러한 모습들이 프랑스 사람들을 아주 불편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속 파리가 역시나 아름답고 멋지게 그려진 데 반해서 그 속의 진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아주 많이 왜곡되어 있었다. 드라마 속 돈 많은 친구는 아시아계 중국인으로 그려졌 듯, 만약 아직도 다른 곳곳에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개고기를 먹는 나라'라든지 하나의 왜곡된 이미지로 그 편견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면 과연 우리의 반응은 어땠을까?
만약 <에밀리, 파리에 가다 2편>이 나온다면 프랑스 사람들도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내용의 조금은 사실적인 파리의 삶을 담아내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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