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생활 - 핸드백을 통째로 소매치기 당했을 때,
가끔 나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고민될 때,
작년 2022년 6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던 때, 나는 퇴근길 지하철역 앞에서 핸드백을 통째로 소매치기당했었다.
어느 영화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기분이 안 좋고 힘든 일이 생길 때, 내가 마치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라고.
내가 영화 속 조연 배우라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눈에 띄는 재밌는 일 하나 없이 모든 것이 무난하게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이라면 그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평화롭고 안정된 삶보다는 조금은 특별하고 기이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지 않을까.
때로는 어처구니 없는 힘든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 맞닥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내가 내 인생이라는 영화 속 주인공이라면, 과연 좌절만 한 채 울고만 있을까. 어떻게든 그 상황을 이겨 나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 보지 않을까. 또 실패하고 더 힘들고 어려운 역경이 찾아와도 그 순간순간을 재미있는 이야기의 한 에피소드처럼 풀어나가면 어떨까.
나는 그 동안 다양한 물건들을 잃어버렸었다. 아프리카에 살면서 휴대폰을 2번 도난당하고 그 외 1달 넘게 묵은 호텔에서 아끼던 소중한 옷들을, 개인 집을 찾은 뒤 몇 달 동안 고용한 청소부 아주머니로부터 옷과 신발을 도난당했었다. 어쩌면 내 주위환경에 익숙해 지려 할 때,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을 한창 신뢰하려는 때, 꼭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났다.
물론 이런 안 좋은 일들이 꼭 아프리카라는 특정한 지역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지난 2017년 프랑스 파리에 도착해서 6개월도 채 안된 시점에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소매치기 당했었다. 역시 그 또한 내가 속한 그 환경에 익숙해지고 일상이 편안해지려는 찰나, 마치 정신을 차리고 살아라는 경고장처럼 사건이 발생했었다.
그리고 지난 5년 여년간 큰 사건 사고 없이 평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찰나, 지금까지 경우에서 볼 수 없었던 아주 큰 스케일의 사건이 발생했다. 휴대폰, 새 지갑, 현금, 신용카드, 한 달치 충전이 완료된 교통카드, 집 열쇠가 들어 있는 핸드백을 통째로 도둑맞았다.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고민할 여지도 없이 매일매일의 내 손에서 당연시 함께 했던 물건들이 없어진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았다. 왜 이런일이 일어났지.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거지. 최근 내가 저지른 몇몇 잘못된 생각과 행동에 대한 카르마의 영향인가.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어떤 물건들을 잃어버렸는지 하나하나 떠올리자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휴대폰? 그 속에 내가 그동안 간직해 온 아기의 사진과 영상들을 모두 잃어버리는 거구나. 새 지갑? 모처럼 내게 지갑다운 고급스러운 지갑이 선물로 들어왔는데. 내 것이 아닌가 보구나. 신용카드? 돈을 아낀다고 계좌에 묵어두고 결국은 카드를 잃어버리고 나니 그 많은 돈을 사용할 수도 없구나. 매일 바르던 립스틱 2개 ?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립스틱 2개를 모두 도둑맞을 것을. 하나만 들고 다니던지 왜 욕심을 내며 살아갔을까.
그리고 이 모든 물건들이 들어있던 핸드백. 나는 분명 기억한다. 가방을 잃어버리기 몇 시간 전, 아니 몇 분 전, 열차에서 아주 잠깐 내가 한 생각이 있었다. 비싸고 유명한 브랜드 가방도 아니고 차라리 오래돼서 손상이 가면 좋겠다. 그럼 맘 편히 새로운 가방으로 바꿀 텐데. 그리고 바로 그 가방을 잃어버렸다.
이 모든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기 전, 내 일상은 언제나처럼 조화롭게 흘러가고 있었을 것이다. 너무 비싼 가격의 고급 제품들은 아니더라도 내 삶을 채워주는 물건들을 내 손 안에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음을 당연시 여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내게 주어진 물건들 하나하나에 대해 더 좋은 것, 더 비싼 것으로 바꾸고 싶은 욕망도 자리했다. 하지만 소유와 욕망에 대한 갈망이 화를 초래한 것인지. 그 모든 것을 이루고 싶은 균형이 깨지자 과연 물건들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새삼 고민해 보게 된다.
소유와 욕망이 모든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고 내가 가진 사물들에 너무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만약 언젠가 또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더라도 나는 조금 더 무덤덤히 사물들과 이별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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