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생활 - 고마웠던 이웃, Sandra & Regis
나의 고마웠던 이웃
Sandra & Regis
프랑스에 살면서 내게는 따로 한국인 친구가 없었다.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했었던 친구들은 다 뿔뿔이 다른 나라로 흩어졌었고 2만여 명이 넘는 한국인이 살고 있는 프랑스 땅에서 한국인 친구 사귀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다. 특히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파리 외곽에 살면서 더더욱 한국인을 만나는 것이 어려워졌었다.
타지에 살다보면 아무리 현지인 친구를 사귀고 내가 가지고 있는 직업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할지라도 가끔은 같은 고향 출신의 한국 사람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서로 정말 다른 관심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특별한 애정과 동질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서로가 아프거나 힘든 일이 생길 때 서슴없이 도움을 요청하고 도와줄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의 지금까지 프랑스 생활에서 그런 한국인 친구를 사귈 기회가 늘 적었다. 한국인 커뮤니티에도 가입해 보고 개인적으로 억지의 노력으로 한국인 친구를 사귀고자 노력했지만 내가 바라던 특별한 친구의 관계로 이어지지 않았었다.
이런 내게 어쩌면 한국인은 아니지만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같이 마음을 터놓게 지낼 수 있는 친구가 생겼었다. 하루는 우리 동네 주말 시장에 나갔다가 치즈가게 앞에서 치즈를 주문하던 내게 프랑스인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었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네. 맞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안녕하세요. 사실은 제 딸이랑 지난달에 파리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콘서트에 다녀왔어요."
"와 정말요? 엄마랑 딸이 함께 케이팝 콘서트를 가셨다고요? 따님이 방탄소년단 팬인가보네요."
"네. 사실 저도 팬이에요."
그렇게 방탄소년단 팬이자 20대 두 딸을 두고 있는 이웃, 산드라(Sandra)씨와 인연이 닿았고 서로의 집에 가족들을 초대하면서 시간이 나는 주말마다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특히 내가 일자리를 구하는 중 힘든 시간을 보낼 때, 혼자서 임신을 하며 여러 어려움을 많이 겪었을 때, 출산을 하고 나서 엄마의 빈자리가 그리웠을 때, 아기를 키울 때 엄마로서 많은 고민을 했을 때, 산드라 씨의 조언들은 늘 내게 큰 힘이 되었었다.
타지에서 혼자 임신을 하고 엄마가 되는 과정은 쉽지 않죠. 그래도 할 수 있어요.
사실 산드라 씨는 프랑스인이 아닌 이탈리아 사람이다. 20대 때 이탈리아를 벗어나 독일에 가서 독일어도 배우고 새로운 곳에서 직장생활도 했었다. 그러다 독일과 프랑스 국경 근처 마을에 사는 프랑스인 남편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프랑스 동부와 파리에 정착하게 됐다. 그녀 역시 이탈리아가 프랑스에서 차로도 이동할 수 있는 옆나라이긴 하지만 엄연히 외국인으로서 혼자 엄마가 되는 과정을 겪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했다.
아무리 프랑스가 선진국이고 좋은 환경을 가졌다고 해도 내가 직접 자고 나란 고향 땅과 다른 병원시스템이나 임신과정을 혼자 헤쳐나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나를 위로해 줬었다. 나와는 20살 정도 차이가 나지만 어쩌면 친구 이상의 엄마 역할도 해 준 산드라 씨였다. 임신 전후로 맛있는 음식도 해 주고 거의 매주 아기를 위한 작은 선물을 전해줬었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수많은 선물 중 이탈리아 전통이 담겨 있는 옷을 선물해 줬었는데, 아기가 엄마 뱃속에 나오자마자 바로 입혀야 하며 앞으로 다가올 인생에 행운을 빌어준다는 의미가 있었다.
아기보다 내 인생을 먼저 찾아요.
아기가 태어나고 1년 넘게 일을 쉬면서 육아에 전념할지 다시 일을 찾아 회사로 매일 떠날지 고민이 됐었다. 그때 오랜 기간 가정주부로 지낸 산드라 씨가 진심 어린 충고를 해줬었는데 내게 정신적으로 많은 힘이 됐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일을 하기로 시작하면서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었다. 엄마 아빠 품을 떠나 하루 8시간을 어린이집에서 생활하게 되는 데 마음이 안쓰러워졌고 과연 밥을 잘 먹을지 엄마 아빠를 찾을지는 않을지 걱정도 된 것이 사실이다.
"아이도 태어난 직후부터 사회생활을 배워나가야 해요. 기회만 있다면 어릴 때부터 어린이집에 보내고 아이가 다른 이들과 어우러지고 생활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필요해요."
그리고 출산을 하고 14개월 정도를 육아에 매진하고 다시 직장을 찾아 복귀하려고 했을 때, 내 마음의 확신은 서지 않았었다. 만 3세까지는 더 아기 바로 옆에서 아기가 성장해 나가는 것을 보고 싶었고 계속해서 엄마의 역할이 필요하다고만 생각됐었다.
"나는 한평생 가정주부로 지냈어요. 물론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고 아르바이트 겸 학교에서 예체능 교사로 잠깐 일도 하고 지금은 남편의 사업을 도와주고 있지만요. 저는 두 딸이 태어나고 청소년이 되기까지 아이들 바로 옆에서 엄마의 역할을 했답니다. 물론 저의 선택이었죠. 아이들 곁에 남아 엄마로서 아이들을 보살피고 보호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지금의 내 삶을 돌이켜보면 많이 후회가 돼요. 내 두 딸과는 끈끈한 사랑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내게는 직장동료도 친구도 많이 없어요. 만약 내가 내 일을 찾아 나의 인생을 살았더라면 노후의 내 삶의 모습이 다르지 않을까도 생각해 봐요. 이제 두 딸도 다 크고 성인이 되어 독립을 하려고 해요. 그 허전함과 상실감은 정말 너무 크네요. 외국인으로 이곳에 살면서 자식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결코 내 인생의 모든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아요. 꼭 나만의 일을 찾고 나의 삶을 찾기를 바라요."
현재 산드라 씨와 그녀의 남편 레지스 씨는 햇살이 많이 드는 지중해 근처 프랑스 남부 도시로 이사를 갔다. 그들이 떠나고 계속해서 우리의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그들의 빈자리가 많이 크게 느껴진다. 나의 프랑스 삶에서 진심으로 나를 위하고 챙겨주고 또 솔직한 조언을 나눠준 그들에게 참 감사함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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