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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owback 2020,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며,

2017 - 2023 PARIS

by cindenella 2021. 3. 16.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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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21년 하고도 3개월이 흘러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 2020년 3월을 기억하게 된다.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으로 온 세계가 멈추게 되었다. 이곳 프랑스에서 내 삶에는 어떠한 변화가 있었을까?

 

회사 출근 대신 100% 재택근무로 전환

2020년 3월 16일, 프랑스에도 코로나바이러스가 급속히 번지게 되었고 회사에서는 직원들을 A팀, B팀으로 나누어 교대근무를 시작하였다. A팀에 속해있던 나는 3월 16일 월요일 대중교통을 타고 회사에 출근하였다. 그 날 함께 사무실을 사용했던 직원 한 명이 퇴근과 동시에 본인 부모님 2명이 모두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뉴스에서만 보던 소식이 현실이 되어서 많이 놀랐었다.

다음 날, 3월 17일 프랑스 국가 전체 봉쇄령이 시작되면서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집에서 재택근무하던 때, @Juyapics, 2020

 

예기치 못한 깜짝 선물이 도착하다

국가 봉쇄령이 내려지고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출퇴근 시간의 복잡한 상황을 피할 수도 있고, 집에서 일을 할 수 있다면 우리 둘 부부에겐 이 시간들이 오히려 반가운 소식이었다. 최대한 나의 위생과 건강에 중점을 두고 다른 걱정 없이 주어진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꾸준히 운동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가며 즐거움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래도 끝을 알 수 없는 집에 갇혀 지내는 시간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특히 몸이 가장 먼저 반응을 보였다. 사회 활동이 없이 단조로워진 일상에 몸이 쳐져만 가고 힘이 없어졌다.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에너지가 없기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이 빠지면서 우울한 감정이 괜히 찾아오곤 했다. 

 

그러다 계속되는 피곤한 증상과 식욕도 점점 감퇴하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 싶어 졌다. 급한 마음에 인터넷으로 내가 가진 모든 증상을 검색해 보니, 이게 웬일인가. '임신 초기'에 나타나는 몸의 변화과정과 매우 유사했다. 당장 남편을 시켜 약국에서 임신테스트기를 구입하였고 결과는 아주 선명한 두 줄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 속에서 임신 소식

진짜 임신인가? 의심 반, 확신 반의 느낌이 들었다. 계속되는 이동제한령으로 병원을 쉽게 방문할 수 없었고 우선 온라인으로 의사 진단을 받기로 했다. 의사의 지시로 다음 날 임신 확인을 위한 피검사를 하고 왔고 벌써 7-8주의 임신 초기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처음으로 산부인과를 방문하게 되었다. 미리 계획하고 준비해 둔 임신 과정이 아니었기에 무슨 질문을 해야 하고 어떤 정보를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 우선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조언을 듣자는 마음에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위생 상의 이유로 남편은 함께 들어갈 수 없었다. 프랑스어로 임신 관련 질문을 하는 데 두려움보다 우리 둘 부부 사이의 아기를 처음으로 확인하는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함에 아쉬움이 크게 몰려왔다. 그렇게 혼자 검진을 받게 되었고 열심히 움직이는 태아의 심장소리가 엄마가 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 주었다.

 

멈추지 않는 입덧과의 싸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본격적으로 입덧이 시작되었다. 평소에 잘 먹던 음식들을 피하게 되고 냄새에 민감해졌다. 처음에는 갑자기 맵고 새콤한 음식들이 먹고 싶어 졌다. 한국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비빔냉면, 막국수, 새콤한 물김치와 같은 음식들을 찾게 되었다. 하지만 부엌 근처에 가는 것조차 힘들었기에 남편에게 부탁할 수 있는 음식들은 삶은 면과 김치 정도였다. 

 

계속해서 입덧이 변하는 것이 신기했다. 매콤하고 양념이 많이 된 음식들이 땡기던 때와 달리, 어느 날부터 갑자기 최대한 양념이 되지 않은 순수한 맛의 음식들이 먹고 싶어 졌다. 또한 갑자기 햄버거와 감자튀김과 같은 패스트푸드가 먹고 싶어 지기도 했다. 임신 중, 가장 즐겨 먹었던 과일도 매주 내가 선호하는 맛이 달랐다. 한 번은 멜론이 너무 먹고 싶어 남편이 큰 멜론 덩어리 6개를 혼자 짊어지고 왔었다. 하지만 멜론 1개를 먹고 난 후, 갑자기 멜론은 쳐다보기도 싫어졌고 청포도만 찾기 시작했던 기억도 있다.

 

한국의 풍성한 엄마 음식이 그리워질 때, @Juyapics, 2020

한국이 그리워지다

한국을 떠나 해외에 나와 살고 있는지 벌써 10년 째이다. 지금 내가 있는 곳보다 훨씬 멀리 떨어지고 생활환경이 불편할 수 있었던 아프리카에 있을 때도 고향에 대한 향수병을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한국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임신이 되고부터 입덧과 함께 시작된 몸의 변화가 아무리 정신력으로 버티려고 해도 내 스스로를 점점 약하게 만들었다.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를 않으니 누군가 내 옆에서 항시 대기하고 간호하듯 돌봐주는 역할이 필요했다. 누구보다 섬세하고 따뜻한 감성을 지닌 남편이기에, 그 역할을 최대한 해 주고 있었지만 뭔가가 나의 바람을 채우지 못했다. 특히 입덧으로 가장 힘들었던 '음식'에 대한 부족함이었다. 어지러움과 구역질로 식욕은 많이 없었지만, 괴로운 고통 속에서 간혹 내가 먹을 수 있는 혹은 먹고 싶은 음식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몇 안 되는 음식들이 바로 '엄마가 해 주는 집밥'이었다. 엄마가 뚝딱 만들어 주던 나물 반찬들, 맛있는 찌개 요리들, 온갖 종류의 다양한 장아찌 요리들, 과연 아무리 노력하는 남편일지라도 프랑스인인 그에게 감히 부탁하기 어려운 요리들이었다. 

 

'아, 이때 한국에 있었다면 엄마의 요리를 실컷 먹을 텐데..'

'엄마의 요리가 있다면 입덧도 버티어 나갈 수 있을 텐데..'

그렇게 엄마의 손맛이 그리워지며 당연히 한국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입덧이 끝이 아니었다

임신 21주 차, 힘들었던 임신 초기의 시간이 지나가고 임신 중기에 들어서니 마침내 입덧이 괜찮아졌다. 몸이 가벼워지고 컨디션도 많이 좋아지게 되었다. 몇 달을 침대에서 지내다 마침내 부엌에 가서 직접 고기나 생선 요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최대한 균형 잡힌 식사를 챙겨 먹고 긍정적으로 하루하루의 일상을 보내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얼마 뒤, 또 다른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손목이 너무 아파오면서 물병을 따는 것조차 힘들어지게 되었다. 몸무게가 점점 늘어나면서 소파나 침대에서 일어날 때 손목이 많이 손상된 것 같았다. 붕대를 감고 생활하다 결국 약국에서 손목 보호대를 구입해서 몇 달을 지내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임신 중기에 갑자기 다리 근육이 수축해서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밤에 한참 잠을 자고 있는 중에 나타났다. 자궁이 점점 커지면서 혈관을 압박해서 혈액순환이 나빠져서 나오는 증상이었다. 칼슘과 마그네슘을 최대한 섭취하고 가벼운 운동과 마사지로 근육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몸에 나타난 변화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임신 말기 9개월에 접어들어 그동안의 온갖 스트레스와 고통이 몸에 쌓이게 되었다. 어느 날, 피부에 붉은 반점들이 군데군데 나타나면서 몸이 쑤시고 아파왔다. 단순한 피부 알레르기라고 하기에는 몸이 이상했다. 결국 응급실을 향했고 대상포진을 확인했다. 출산이 몇 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상포진이라니.. 아기에게 해가 될 수 있기에 진통제를 포함한 아무런 약을 사용하지 못했고 오로지 시간이 지나 병이 낫길 기다려야 했다. 약 2주의 시간 동안 밤새 고통을 참으며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1-2시간의 잠을 이루는 것이 전부였다. 

 

2020년 12월24일, 아기와 만난 순간, @Juyapics, 2020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의 선물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대상포진의 고통도 시간이 지나자 차차 줄어들었다. 자, 이제는 정말 출산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그동안 프랑스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출산 전 교육을 통해 출산을 알리는 신호를 몇 가지 머릿속에 익혀두었었다. 하지만 출산 예정일이 다가와도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런 진통도 느껴지지 않은 채, 팬티가 살짝 젖어있음을 발견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에 전화해서 물어보자 양수가 터진 것 같다며 당장 병원으로 오라는 답을 받았다. 에이, 아무런 진통이 없는데 설마? 

 

병원에 도착해서 코로나바이러스 테스트를 먼저 마쳤다. 그리고 양수 확인 결과 출산이 다가옴을 확인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자궁수축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12월 23일 저녁, 병원에 입원해 아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약 16시간의 진통을 겪으면서 오로지 내 옆에 있는 남편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진통이 최고조로 달할 때 마침내 무통주사를 맞게 되었고 자궁문이 한 시간에 1cm씩, 7cm까지 열리게 되었다. 아, 이제 3시간만 더 참으면 되겠지. 하던 찰나 갑자기 의사 선생님이 1시간만 더 기다려보고 제왕절개 수술로 들어간다고 한다. 갑자기 왜? 지금까지 자연분만을 할 거라고 이렇게 16시간을 기다려 놓고, 갑자기 왜?

 

이유는 아기가 너무 크고 엄마만큼이나 아기도 오랜 시간 지치면서 자궁으로 나오는 힘이 빠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은 응급 제왕절개를 선택하면서 내게는 또 다른 고통과 공포가 찾아들었다. 남편의 손을 놓고 혼자 차가운 수술실로 향하던 그때,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다행히 아주 짧은 시간에 수술을 마치고 아기를 만나게 되었다. 2020년 12월 24일, 아기는 3.99kg, 50cm로 건강한 모습으로 태어났다. 

 

한창 대상포진을 겪을 때, 누군가 그랬었다. 대상포진이 출산의 10배 넘는 아픈 고통이라고. 16시간의 진통과 제왕절개 수술을 걸쳐 힘겨운 출산과정을 거치면서 감히 대답할 수 있겠다. 대상포진의 고통에 비하면 출산은 견딜만한 시간이었다. 

 

어쩌면 코로나 상황 속에서 몸도 마음도 보통의 임신, 출산과정에 비해 조금은 더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나를 낳고 키워준 엄마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졌으며, 준비되지 않은 임신과정도 결코 만만치 않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남편과 나, 아기 셋이서 하나의 가족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서로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귀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함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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