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남편을 통해서 옆집 아주머니가 등산모임에 나간다는 것을 들었다. 평소 산을 좋아하고 등산을 하고 싶어 했던 내게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아주머니와 시간을 맞추어 약속 날짜를 잡았다.
'목요일 오전 8시 15분에 집 앞에서 출발. 8km 거리. 여분의 양말/신발 필요. 간단한 간식/물 챙겨올 것.'
아주머니에게서 받은 메세지를 참고로 간단하게 가방을 챙겼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의 동네에 있는 공원 주위를 걷지 않을까. 하며 간단히 물과 시리얼 바를 챙겼다. 여분의 신발과 양말은 챙기지 않았다. 그리고 아침 8시 10분이 되어서 아주머니가 먼저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출발! 오늘은 본인이 아닌 등산모임의 다른 회원이 주최하는 날이라고 한다. 매번 회원들끼리 돌아가면서 등산 장소와 시간을 정하는 것이다. 어랏, 그런데 아주머니가 지하 주차장으로 발을 옮긴다.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이라고 한다. 차를 타고 약 25분을 달려 오늘 모임의 만남의 장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모임 장소에 도착 후, 나는 살짝 놀랐다. 우리를 제외하고 10명의 회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백발의 나이가 많은 어른들이었다. 나의 부모님 또래의 중년층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노년층이었다. 순간 본인들의 자녀들보다도 훨씬 나이가 젊은 외국인의 등장에 그들 또한 놀란 눈치였다. 우선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나를 포함한 새로운 멤버 3명이 각자 간단한 소개를 마쳤다. 그리고 오늘 모임의 리더의 역할을 담당하는 분이 오늘의 등산 일정과 간략적인 설명을 해 주었고 각자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이들은 65세 이상의 은퇴를 한 노년들로 평일 아침 시간을 활용하여 본인의 건강과 친목 도모를 위해 등산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의 신입멤버 나와 다른 남성분 2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제대로 갖춰진 등산화와 복장으로 참가했다. 걸음의 속도도 빨랐다. 지팡이를 짚어야 할 나이가 아닐까 생각되는 분들도 있었지만 나의 큰 착각이었다. 숲길을 따라 길을 걸으며 자연스럽게 내 옆을 지나가는 다른 멤버들과 각자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Madame David, 69세
데이비드 아주머니는 우리 옆집에 살고 있다. 아파트 입구에서 몇번 지나치면서 서로 인사를 하며 간단한 안부를 물은 것 외에는 우린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아직은 서먹서먹한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각자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한국을 떠나 타지에서 살면서 힘든 점은 없는지, 편한 직장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지, 파리에서 친구들은 많은지, 평범한 일상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 아주머니는 개인의 삶을 내게 서슴없이 털어놓기 시작했다.
첫 번째 남편과 헤어지고 두 번째 파트너를 만났지만 그는 건강상태가 안 좋아지다 치매로 결국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후, 아무 가진 것 없이 혼자 남겨진 상황에서 이미 각자 가정을 꾸린 자식들에게서도 큰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몇 년 간, 홀로 열심히 일하며 외롭게 지내다 지금 나이 69세에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앞으로 더 살아봤자, 10년일 텐데, 내 인생 이렇게 끝나면 아깝지 않겠어.' 그 깨달음과 함께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여행도 가고 취미활동도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7박 8일 동안 포르투갈 성지순례도 하고 왔다고 한다.
Madame Sylvie, 50대 후반
실비 아주머니는 오늘 처음 온 멤버였다. 날씬한 몸메에 청바지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은퇴 모임'에 들어와도 되는지 의문일 정도로 젊어 보였다. 아직 프랑스어가 서툰 내게 환한 미소로 내 이야기를 경청해 줄 만큼 첫 느낌이지만 마음씨가 따뜻해 보였다. 그녀는 오랜 시간 은행에서 근무하며 커리어우먼으로 지내다가 올해 7월 은퇴를 했다. 은퇴 후, 집에서 쉬며 대학생 자녀 3명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지만, 본인만의 일이 없이 사는 삶에 무료함을 느꼈다. 그리고 우연히 찾은 등산모임을 발견하고 새로운 취미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몇 분들과도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1990년대 초반 선박사업에서 일할 당시, 한국을 여러번 출장 다녀왔다는 할아버지도 있었고 남편을 여의고 혼자 방이 6개인 큰 집에 살기가 무서워 조그마한 아파트로 이사했다는 할머니도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한국에 있는 엄마 생각도 나면서 어디든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어렵다는 말. 오늘 함께 등산 모임에 나온 분들에게 들었다. 특히 나이가 들고 내가 혼자가 되었을 때, 곁에 있어 줄 가족들도 이미 본인들만의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각자의 보금자리를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있기에 내가 혼자가 됨을 크게 위로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외부에서 새로운 관심사와 취미활동을 가진 사람을 찾으려고 노력해도 이미 결속력이 다져진 모임에 들어가 그들의 일원이 되는 것도 쉽지가 않다고 한다.
지금 내 곁에 사랑하는 누군가 혹은 가족이 있다면,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함과 동시에 언젠가 나 혼자만의 순간을 한번쯤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 블로그 글 감상 후, 댓글과 공감을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공감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Nobel prizes in Economic Sciences, Esther Duflo 에스더 뒤플로 노벨 경제학상 (0) | 2019.10.24 |
---|---|
Critical thinking in France, 프랑스의 비판적 사고 교육 (0) | 2019.10.15 |
프랑스 사람들은 차갑고 냉소적이다? (0) | 2019.09.10 |
Cabaret Vert, 프랑스 여름 뮤직 페스티벌 (0) | 2019.09.06 |
Musee d'Orsay, 파리 오르세 미술관 (0) | 2019.09.02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