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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 - 타히티의 고갱 (Gauguin, Voyage de Tahiti)

2017 - 2023 PARIS

by cindenella 2020. 9. 22.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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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오르세 미술관을 방문할 때마다 유럽의 다양한 화가들 작품들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작품이 있었다. 내게는 그것이 화가, 폴 고갱 (Paul Gauguin)의 그림들이었다. 동시대의 다른 인상파 화가들에 비해 보다 색이 더 선명하고 강렬했으며 그림의 대상이 유럽의 흔한 자연풍경이나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Arearea by Paul Gaugain, 1892 @Google

 

그의 그림들 속에는 피부색이 까무잡잡한 여인들이 많이 등장했다. 하지만 아프리카 흑인과는 다른 이국적인 모습이었다. 찰랑거리는 검은 빛깔의 긴 생머리를 한 여인들, 열대지방의 자연풍경 속 화려한 색채들을 보면서 과연 어느 지역의 사람들일까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19세기 말, 아직 문명이 발달되기 전인 남미의 원시부족을 그린 것일까, 아니면 아프리카의 어느 섬나라일까, 놀랍게도 그 대답은 남태평양의 이국적인 섬나라, 타히티였다. 타히티에서 만난 여인들의 모습으로 다양한 그림을 그린 고갱, 과연 그는 어떻게 그곳을 향하게 된 것일까?

 

 

영화 '타히티의 고갱 (Gauguin - Voyage de Tahiti)'은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의 모습으로 시작했다. 전업 화가로 살아가는 고갱은 덴마크 출신의 아내와 5명의 딸, 아들을 둔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하지만 전업 화가로 살아가는 데 뒤따라오는 경제적인 어려움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파리 시내의 한 카페에서 동료 예술가들과의 만남에서 갑작스러운 선언을 한다. "파리에는 그럴 가치가 있는 얼굴도, 풍경도 더 이상 없다" 라는 말과 함께 파리 화단을 떠나, 저 멀리 태평양의 섬으로 떠나겠다고 한다. 

 

오랜 항해 끝에 마침내 도착한 프렌치 폴리네시아 (French Polynesia)에서의 삶은 우리가 상상하는 지상낙원의 행복한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한창 프랑스 제국의 문명이 침입하던 때, 원시 부족의 모습 그대로 보다는 자본주의의 삶이 이미 개입되어 있었다. 그래서 고갱은 점점 더 깊숙이 자연 그대로의 삶을 찾아 정글 속으로 들어갔고, 타히티에 정착하게 된다. 그곳에서도 오로지 그림만을 그리며 살아가는 폴 고갱은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이미 해가 지고 난 후의 밤하늘, 촛불 하나로 불을 밝히며, 캔버스를 살 돈이 없어 직접 헝겊을 찢어 나무틀에 엮어 만든 캔버스 조각에, 그는 하루도 쉬지 않고 그림에 매진했다. 

 

 

그리고 우연히 잠시 휴식을 찾아 떠난 깊숙한 정글에서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당시 14세의 나이로 알려진 여인은 테후라라는 이름으로 영화 속에 등장했다. 테후라는 폴 고갱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 속 등장하는 여인의 모습 대부분이 테후라가 직접 모델로 포즈를 취한 모습으로 그녀가 당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파리에서의 어려웠던 사정과 마찬가지로, 테후라와의 삶에서도 한 가정의 가장으로 그는 경제적인 부분을 뒷받침하지 못했다. 결국은 아내를 위한 책임감으로 잠시 그림을 접고 부둣가에서 막노동을 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다. 어쩌면 프랑스의 오랜 식민 제국주의가 배경이 된 곳에서 프랑스인인 그가 현지인들과 함께 노동자로 참가하는 모습이 의아하긴 했다. 동시에 그에게 타히티라는 곳이 다른 프랑스인들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단순히 식민주의 사고로 현지인들의 삶에 일방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고갱에게 그곳은 본인의 유일한 삶의 열정,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자유의 땅'이었기에 오히려 현지인들의 삶을 더욱 이해하고 존중하는 모습이었다.

 

Femmes de Tahiti by Paul Gaugain, 1891 @Google 

 

Merahi metua no Tehamana by Paul Gaugain, 1893 @Google

 

안타깝게도 고갱의 그림들은 그가 살아 생전 빛을 발하지 못했다. 타히티에서의 몇 년간의 삶을 떠나 다시 파리로 돌아왔지만 그의 그림들을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았다. 결국 다시 그만의 지상낙원인 타히티로 떠나 다시 그림에 매진하지만 짧은 시간 내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손에 꼽히는 당시 인상파 화가들 중 한 명으로 자리한 폴 고갱. 그의 삶을 전체 엿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타히티에서의 시간이 왜 지금의 그가 존재하게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에게 있어 예술이란, 자고로 누군가의 훌륭한 작품을 있는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고 당장의 유행을 좇으며 눈에 보이는 이익을 추구하는 목적이 아니었다. 폴 고갱에게 예술이란 나 자신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삶의 순수한 목적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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