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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에 현금 선물은 이제 그만, 친구가 내게 준 교훈

2017 - 2023 PARIS

by cindenella 2022. 12. 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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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대학원 시절 만나 지금의 소중한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는 친구, @Juyapics, 2018

 

내게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매일을 연락하는 친한 친구가 있다. 대학원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출신인 내 친구는 그동안 우크라이나 정부 기관을 포함해서 파리에 있는 국제기구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한 경험이 있는 유능한 인재이다. 지금은 결혼을 하고 남편의 직장이 있는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서 1살이 된 아기와 살고 있다.

 

우리 둘 다 1년 차이로 결혼을 하고 아기도 낳으면서 서로 학교 시절에서의 학문적인 공통 주제 외에도 일상생활의 타지 생활에서 오는 어려움이나 아기를 키우면서 필요한 노하우 등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늘 먼저 서로의 소식을 공유하고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을 마음 편히 나눌 수 있는 존재이다.

 

이런 나의 친구의 아들이 첫 돌을 맞이하게 되었고 어떤 선물을 해 줄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에 살고 있기에 직접 축하하러 갈 수도 없고 프랑스에서 특별히 구할 수 있는 선물을 찾고 싶었다. 불어가 나오는 장난감을 사줄까? 영어와 불어가 섞인 동화책을 사줄까? 멋진 1살 기념 옷을 사줄까?

 

혼자서 행복한 고민을 하던 찰나 혹시나 친구네에 정말 필요한 물건이 있지 않을까 해서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지 직접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친구의 대답은 지금 살고 있는 코트디부아르에 도착한 해외 우편물이 여러 번 분실한 사건이 있었다며 정중히 선물을 보내지 말아 달라고 했다. 아기에게 줄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고 싶었는데 너무나 아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아무런 선물도 하지 않는 것은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며 다른 방안을 궁리해 보기로 했다. 친구는 내년이든 다음 우리가 만나는 날 직접 선물을 달라며 괜히 미안한 마음을 가지지 말아 달라고 했지만 그래도 소중한 첫 돌을 같이 기념해 주고 싶었다.

 

결국 친구네 은행 계좌에 돈을 송금하기로 결정했고 나와 남편 각자가 일정 금액을 나누어 보내기로 했다. 하필 우리가 돈을 보낸 날, 친구는 다음 달 있을 우리 딸의 생일을 위해 깜짝 선물을 보내왔다. 친구는 직접 프랑스 웹사이트 인터넷 쇼핑을 통해 물건을 배송하는 법을 택했다. 그렇게 깜짝 선물 보따리를 풀고 나서 친구에게 우리도 유일한 방법으로 현금을 송금했으니 아기의 한 살 생일날 꼭 필요한 장난감을 사주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 친구의 답변이 왔다.

 

이렇게 신경 써주고 챙겨줘서 너무 고맙지만 돈을 받지 않겠다고. 은행에 전화해서 송금내역을 취소할 수 있는지 문의하라는 내용이었다.

 

학교에서부터 본인의 생각과 의견을 똑 부러지게 표현하던 친구였기에 단순히 예의 상 거절은 아니어 보였다. 그리고 왜 우리의 성의를 그렇게까지 거절하고 싶은지에 대한 장문의 메시지가 추가적으로 도착했다.

 

지난 여름 친구의 아들과 우리 딸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 @Juyapics, 2022

 

사랑하는 내 친구,

 

오늘 이렇게 우리가 이야기하는 내용을 일찍 나눴더라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아무튼 지금이라도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앞으로는 우리 사이에 현금을 선물로 주는 것은 없는 것으로 서로 합의 보도록 하는 게 어떨까?

네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프랑스 인터넷 쇼핑 통해서 너네에게 선물을 쉽게 보낼 수 있는데 아프리카에 사는 우리에게 선물을 못 보내니 그게 불공정하다고 생각되면 우리가 다음 만날 때 직접 선물을 주면 좋을 것 같아.

 

현금을 서로 주고받는 것이 친구관계나 인간관계에서 필요할 때가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돈이 오고 감으로서 서로의 관계에 괜한 복잡한 문제를 만든다고 생각해.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예로 설명할게. 미국에 살고 있는 내 친오빠가 몇 년 전 아이를 낳았을 때 나는 미국에 갈 수 없는 상황에 조카를 축하하는 선물을 대신해 돈을 보냈었어. 그리고 2년 뒤, 내 아들이 태어났을 때 오빠는 그 보답으로 돈을 보내왔지. 하지만 내가 보낸 금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었어. 오빠 성품 자체가 늘 남에게 배려하는 것도 있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오빠이기에 더 큰 보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이렇게 서로 돈을 주고받는 걸 시작하자 우리 관계가 마치 서로 경쟁관계처럼 변하게 됐어. 내가 오빠에게 돈을 보낼 때마다 오빠는 그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보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긴 것 같아. 마치 누가 더 많은 돈을 보내는가 배틀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우리 개개인은 누구에게나 각각 말 못 할 금전적인 어려움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말이지. 우리 관계에서 돈을 거래하는 건 없는 것으로 하자. 오로지 선물만 교환하는 것으로! 선물은 보내는 사람의 마음이 담긴 거야. 그 마음이 직접 만든 물건이 될 수도 있고 손 편지가 될 수도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보내는 사람의 진심 어린 마음이야. 그게 중요한 거야.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주위 사람들이 말 못 할 금전적인 어려움을 각자 인생에서 겪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봐 왔어. 또한 금전적으로 빈곤한 삶이 사람을 위축시키는 모습도 봐 왔고 아무리 친한 사이인 가족 관계라 할지라도 서로 돈이 얽히면서 그 인연을 끊는 경우도 봤어. 서로의 상황은 모른 채 돈으로 맺어진 인연은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기 바쁜 것 같아.

 

나는 우리의 소중한 친구 관계에서 행여나 이런 문제가 생기는 기회를 처음부터 만들고 싶지 않아.

 

나의 긴 메시지를 읽어주느라 고맙고 내 마음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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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남편은 친구의 진심이 담긴 메시지를 읽고 난 후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삶의 중요한 교훈을 얻은 느낌이었다. 물론 '돈'이라는 물질보다 우리의 마음이 더 잘 전달됐으면 했지만 결국은 돈이 가져올 수 있는 인간관계의 복잡한 문제들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인가 내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의 돈 문화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됐다. '어버이날 부모님선물 1위는 현금', '연인 관계에서 기념일 선물 현금 선호' 등에서 돈이 제일 중요한 선물 문화로 자리한 것을 보며 마음이 안 좋아졌던 것이 사실이다. 진심으로 축하할 순간에 돈보다는 내 마음이 전달될 수 있는 선물이나 손 편지를 대신해서 준비해 보면 어떨까? 우리 관계에서 오히려 두고두고 기억할 특별한 이야기가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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