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Château de Sedan, 유럽에서 가장 큰 중세 성을 찾아 세단마을 방문

2017 - 2023 PARIS

by cindenella 2019. 7. 21. 20:08

본문

유럽에서 현존하는 중세시대 가장 큰 성(Castle)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샤르빌 메지에흐 도시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프랑스 북동부 마을, 세단(Sedan)에 위치해 있었다. 인구가 2만 명도 채 되지 않은 아주 작은 마을에서 새롭고 흥미로운 사실들을 많이 발견하였다.

 

#1. 자동차 이름의 세단?

잠시, '세단'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왠지 익숙하지 않은가? 미국의 자동차 브랜드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세단의 기원을 살펴보면 이곳 세단 마을에서 탄생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승용마차가 나오기 전, 유럽의 귀부인들이 야유회를 가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 남자 2명이 운반하는 상자를 타고 외출했는데, 이를 제작하던 곳이 '세단' 마을이었던 것이다. 그 후에도 기술을 이어나가 자동차 카시트를 만드는 산업을 발전시켰고 고품질의 카시트를 수출하다 자동차 이름으로 발전된 이야기이다. 

 

#2. 세단은 독립된 국가였다?

세단은 유럽의 중세시대 18세기 초반(1709년)까지 프랑스 공화국 소속이 아닌 왕자가 지배하는 국가로 공국(Principality)였다. 

 

#3. 세단 성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이유는?

세단 성은 15세기 경 세단왕국 왕족 가문, LA MARCK 의 왕자에 의해 설립되었다.  현재까지 유럽 내, 중세시대 성 중에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데는 당시 건축을 위해 7-14m 길이의 크기가 큰 돌을 사용했으며, 총 완성되는 데만 약 300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18세기 중엽부터 서유럽을 중심으로 기계 발명과 기술혁신으로 산업화가 시작되었고 많은 도시에서 쓸모가 없어진 오래된 성벽을 파괴하는 추세였다. 그러던 찰라, 1870년에 프로이센-프랑스 전쟁(Franco - Prussian War)이 시작되었고 전쟁 후 포로를 잡아두기 위해 당시 세단 성은 파괴되지 않았었다. 그 후, 세계 1차, 2차 대전을 겪을 당시도 성은 보존되었고, 2차 대전 이후에는 감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성의 한 부분을 관광객들을 위한 현대식 호텔로 개조하여 사용 중이다.
성으로 들어가기 전, 우리도 중세시대 귀족이 되어 보았다.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중세시대 건물을 있는 그대로 간직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성에 올라 외부로 나가면 이렇게 외부의 적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던 최후의 방어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세단 성의 조감도도 사진으로 남겨보았다.
성벽을 마주하고 개신교의 영향을 받은 근대식 도시가 형성된 모습이 바로 보인다. 
우리가 사진을 찍은 이 곳은 그 옛날 성에 거주하는 여성들만이 이용할 수 있었던 휴식처라고 한다.
활을 쏘는 군인의 모습으로 당시 신고 있는 구두의 앞쪽이 길수록 높은 부의 상징을 나타내었다고 한다.
프랑스 북부지역에 있는 세단 성은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와 인접해 있다.
정돈된 느낌의 깔끔한 도시 모습이다. 굉장히 조용하고 한적한 느낌이었다.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건너 온 공주의 결혼서약을 진행하기 위해 저 멀리 이탈리아 로마에서 증인이 왔다고 한다.
잠깐동안의 중세시대 여행을 마치고 성 바깥으로 나오니 아기자기한 집들이 눈에 띄었다.

 

 

* 블로그 글 감상 후, 댓글과 공감을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공감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